나의 문화유산답사기4
네번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북한에 있는 문화유산을 답사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세권의 책을 읽으면서는 답사한 곳을 적어가며 지도에 표시해가며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책에 나온 답사장소가 어딘지 기록하지 않았다. 지도에 표시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책의 내용을 내 가슴에 새기기위해 집중하는 마음을 우선했다.
책을 읽는 도중 내가 언젠가 한번 가졌던 질문과 같은 부분을 만나고는 몇번이고 고쳐 읽은 시간이 있었다.
상원 검은모루동굴 답사의 끝부분에 북한의 실무자가 한 질문이다.
"교수선생, 이 참에 하나 더 묻자요. 나는 박물관에 가면 그 뗀석기라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저것도 유물인가 생각하며 그냥 지나갑니다. 뭐가 대단하고 신기하냐고 겉으로 나타냈다간 무식하다는 말 들을까봐 묻지도 못하는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겁니까?"
이에 대한 대답.
"이것은 그냥 '깨진 돌'이고 뗀석기는 형태와 쓸모를 머릿속에 구상한 다음 내리쳐서 만든 '깨뜨린 돌'입니다. 대개는 내리쳐깨기와 때려깨기로 만들었지요. 즉 행위에 목적과 의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106쪽)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나 역시 저런 돌멩이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하는 질문을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목적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 덕분에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었음을 새삼 생각하는 부분이다.
북한에서의 답사기라는 특징에 맞게 이런 주제가 아니면 접하지 못했을 지식 한 토막.
저자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본 아래의 설명이다.
"나는 순간 북한에서 고고학과 민속학은 그렇게 열정적으로 연구했으면서 미술사는 왜 소홀히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의 해답을 바로 여기서 얻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 고고학을 비중있게 다룬 것은 민족적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한 작업이었고 민속학은 인민의 삶과 생활정서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연구해온 것이다. 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의 이름도 '고고민속'이다.
이에 반해 미술사는 근본적으로 지배층문화의 소산이기 때문에 부정적 시각으로 보며 아주 홀대하고 있다.(후략)" (163쪽)
마지막으로 내가 책에서 배운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방법 한가지가 있어서 기록하고자 한다.
정릉사를 답사하던 저자가 뒤뜰에 있는 우물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 부분이다.
"장방형의 넓적한 화강암을 정팔각형으로 빈틈없이 이를 맞추어 우물턱을 올렸는데 그 비례도 아름답지만 튼튼한 시공에서 더 큰 미(美)를 느끼게 된다. 견고미라고나 할까."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읽어 온 저자의 전형적인 감상 스타일이다. 내가 순간 멈칫 한 배움의 순간은 바로 다음 구절이었다.
"우물가에는 돌 잘 다루던 고구려사람들이 성(城)돌처럼 가지런히 쌓은 물도랑도 있고, 그 옆으로는 신기하게도 온돌자리가 굴뚝터와 함께 남아 있다."
(266쪽)
바로 고구려사람들, 당시 사람들을 바로 이 자리에 초대하여 눈 앞에 있는 듯 재현하는 방법이다. 돌을 잘 다루던 고구려 사람들이 일하던 모습, 최고의 집중력으로 돌을 쪼고 맞추던 모습, 일하는 중간 서로 우스개소리도 해 가면서 긴장을 풀었을 그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들이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이 우물을 만들고 있었는지를 상상하면서 마치 내가 그들의 한 부분이 되어 소리없이, 흔적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남쪽이건 북쪽이건 마음대로 원하는대로 답사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다닐 수 있는 우리 후손들이 부럽기만 하다. 지금 우리 세대에도 가능한 일이되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목차>
제1부 평양 대동강
평양행 1-고려항공 비행기에서: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평양행 2-서재동 초대소: 서쪽 창가의 미루나무 한 그루
대동강 1-대동강과 정지상: 비 갠 강가에는 녹음이 푸르른데
대동강 2-대동문과 연광정: 천하제일강산의 제일누대
대동강 3-부벽루와 김황원: 넓은 들 동쪽으로는 먼 산이 점, 점, 점
대동강 4-칠성문과 을밀대: 황혼의 대동강가엔 환영(歡迎)의 환영(幻影)들이
보통강 보통문: 무너진 서까래는 고치면 되겠지만……
평양 대성산성: 드넓은 벌판을 보듬은 고로봉식 산성
제2부 고인돌에서 현대미술까지
상원 검은모루동굴: 호모 에렉투스의 살림터
고인돌 기행-용곡리·귀일리·문흥리 고인돌: 고조선 거석 기념유물의 고향
단군릉 소견: 1,994개의 돌덩이가 지닌 뜻은
주영헌 선생과의 대화: “력사적 상상력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조선중앙력사박물관 1: 역사교육관으로서 박물관의 과제
조선중앙력사박물관 2: 잃어버린 왕국 발해를 찾아서
조선미술박물관 1: 북한의 아트뮤지엄, 조선미술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 2: 단원과 겸재를 만나다
북한의 현대미술: 세월만큼 멀어진 남북의 미술
제3부 묘향산
묘향산 기행 1-청천강과 안주들판: 문학이 삶 속에 살아있을 때
묘향산 기행 2-보현사와 8각13층석탑: 그리하여 산은 묘향, 절은 보현이라 했다
묘향산 기행 3-안심사 승탑밭과 만폭동: 장엄하고도 수려한 산, 묘향산
묘향산 기행 4-상원암과 향산호텔: 묘향산 물은 흐르면 폭포요, 마시면 약수라
묘향산 기행 5-서산대사의 금강굴: 내 마음을 갈무리하는 고요한 암자
제4부 평양의 고구려 고분벽화
진파리 회상 1-정릉사: 천년의 비밀을 지켜온 우물 앞에서
진파리 회상 2-동명왕릉: 민족의 영웅서사시로 다시 살아난 그분
진파리 회상 3-진파리 벽화무덤과 평강공주: 아름다운 인생을 축복하는 벽화
강서의 고구려 벽화무덤 1-덕흥리 벽화무덤: ‘축소된 우주’ 속의 견우와 직녀
강서의 고구려 벽화무덤 2-삼묘리 강서큰무덤: 아! 고구려 문화의 위대한 영광이여!
그리고 남은 이야기: 평양 용악산 용곡서원의 둔암과 법운암의 백범 북녀(北女)의 미소
북한답사를 마치며
후기 : 이 책이 나오기까지
책의 독자를 위해 다시 글을 쓰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