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1

저자
이우상 지음
출판사
다할미디어 | 2009-06-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조선왕릉은 조선왕조 27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추존 왕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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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에 대한 책이다.

구성은 조선 왕조 역대 왕의 재위 순서대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왕릉의 위치는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닌다. 짤막한 역사의 내용과 함께 각 왕의 특징을 왕릉과 함께 엮어서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왕릉의 이름과 주인공, 그리고 간략한 특징들을 인용한 것이다. 독자로써 다음에 해당 왕릉을 찾을 때 한번 쯤 다시 보고 가면 좋을 듯한 특징을 나름 발췌해보았다.

 

 


 

 

건원릉 : 태조

건원릉, 혁명가 이성계가 누워있는 곳이다. 능호가 유일하게 두 글자다. 건은 하늘의 두 원은나라와 도읍을 처음 세웠다는 뜻이다. (37쪽)
 
헌릉 : 태종과 원경왕후
남한에 있는 왕릉중 유일하게 문인석, 무인석, 석양,석호,석마가 다른 왕릉의두 배인 각 2쌍씩 설치되어 있다. 곡장 안의 석호,석양 석물이 총 16개다. 특히 능의 위패에는 석호 네 마리가 버티고 있다. 모두 바깥쪽을 향하고있다. 대단한 경호다. 능침의 옆에서 오른쪽을 내려다보면 경호는 더욱 심하다. 국가정보원이 거기 있다. 국가 최고의 정보와 방어력이 있는 곳이 아닌가. 태종의 성품과 어울리는 기관이 외호하고 있다. (79쪽)

영릉 : 세종과 소헌왕후
영릉이 처음부터 경기도 여주에 자리잡은것은 아니다.1446년 왕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 서쪽에 조성하여 그 우실을 왕의 수릉으로 삼았다가 141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했다.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다.(86쪽)

세조 때 영릉이 불길하다는 논의가 대두되었으나 서거정 등이 반대하여옮기지 못하고예종 1년에 현 위치로 천장했다. (87쪽)

현릉: 문종과 현덕왕후
문종은 죽어서도 홀아비 신세를 겪었다. 현덕왕후가 세자빈 신분으로 단종을 낳고 죽자 경기도 시흥 군자면에 안장된다.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현덕왕후로 추존되고 소릉이란 능호를 받는다. 1452년 문종이 종기가 터져 경복궁 강녕전에서 승하하자 건원릉 동남쪽 줄기에 묻힌다. 태조의 건원릉에 이어 동구릉에 들어온 두 번째 능이다. 이때 시흥에 있던 현덕왕후 능도 천장해 현릉은 합장릉이 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생전에 못 다한 부부의 금슬을 다시 잇는다. 그러나 다시 이은 금슬은 6년 만에 파국을 맞는다. 세조에 의해 현릉이 파헤쳐지고 썩을 대로 썩은 왕후의 시신은 시흥 군자 앞 바닷가 10리 바깥에 내팽겨쳐진다. (108쪽)

사릉: 단종비 정순왕후
사릉 제향에 참가한 이들은 세 부류다. 단종과 정순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살벌한 분위기에서 가례를 올리고 동거한 기간이 1년도 안된다. 후사가 있을리 만무하다. 단종의 직계 후손은 없다. 제향을 주관하는 전주이씨 문중 사람들, 정순왕후의 친정인 여산송씨 문중 사람들, 그리고 이곳이 선산인 해주정씨 문중 사람들이 모여 매년 정순왕후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린다. (126쪽)
한 많은 여자의 일생, 엉겁결에 권력의 핵심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천추의 한을 남긴 여인 정순왕후는 81세(1521년, 중종 16)로 생을 마감한다. 죽을 당시 신분은 왕후가 아니었다. 국장의 예를 갖춘 능을 조성할 신분이 아니다. 단종의 손위 누이 경혜공주의 시댁인 해주정씨 집안에서 장례를 주도했고 해주정씨 묘역에 안장됐다. (129쪽)

광릉: 세조와 정희왕후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가 없다. 명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으나 유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147쪽)

경릉: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조선 왕릉 중 비의 능이 왕의 능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은 경릉이 유일하다. 석물도 더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이유는 이렇다. 지아비 덕종은 1457년(세조3) 19세로 요절했고 당시 신분은 왕세자였다. 지어미 인수대비는 승하 당시 신분이 왕대비였다. 왕릉 자리 원칙은 남존여비가 아니라 군신관계가 우선이다. 종묘사직을 위한 왕릉이기이 군신관계가 절대적이다. (153쪽)

창릉 : 예종
왕릉에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예종의 창릉은 화재의 기록도 갖고 있다. 왕릉은 산세가 좋고 주변에 수목이 울창하다. 부드러운 잔디 이불이 풍성하다. 산불나기 좋은 여건이다. 민가에 불이 나거나 일반 백성의 무덤에 불이 나도 큰일이거늘, 왕릉에 불이 나면 나라의 변고라 하여 왕은 정사를 폐하고 사흘간 소복을 입고 참회한다.

1625년(인조3) 2월 28일 창릉에 불이 나자 인조는 조회를 폐하고 백관과 함께 3일간 소복을 입었다. (<<인조실록>>권8). 이듬해 1월 26일 또 불이 나자 임금과 백관은 다시 소복을 입었다. (<<인조실록>>권11). 1896년(고종33) 4월 23일 능상에 화재가 발생하다(<<고종실록>> 권34). 기이한 기록이다. 화기가 센 것만은 틀림없다. 능에 불이 나면 책임을 물어 능을 지키는 수복(관리)의 목을 베거나 중벌로 다스린다.(158쪽).

선릉 : 성종
성종의 능은 현재 유해가 없는 빈 무덤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무덤을 파헤쳐 도굴했다. 정자각은 불태웠다. 왕의 시신은 행방을 알 길 없다. 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성종의 유해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전란 중 몽매한 왜군들이 아무렇게나 흩뿌려 버렸을 것이다. 선조는 새로 관을 짜서 부장품으로 넣었던 옷을 태운 재를 담아 다시 안장했다. 성종의 무덤 속에는 수의로 넣었던 옷을 태운 재만 관에 들어 있다. 몸을 잃은 넋은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174쪽)

연산군묘
조선 제10대 연산군과 폐비인 거창군 부인 신씨, 궁인 조씨, 사위와 딸의 무덤이 있다. 역사의 증언이 없다면 오붓한 가족묘이다. 연산군의 딸이 능성구씨 집안으로 시집갔는데 사위가 구문경이다. 연산군이 누워 있는 묘역은 능성구씨 선영이다. 연산은 사돈네 선영에 묻혀 있는 셈이다. 왕릉의 능역 규모는 40만~50만 평이 예사인데 여기는 4200여 평으로 조촐하다. (197쪽)

정릉 : 중종
3명의 왕후를 두고도 중종의 능은 단릉이다. 원비 단경왕후 신씨는 온릉(경기도 양주시 장흥명 일영리), 제1계비 장경왕후 신씨는 희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 능역),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는 태릉(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부부가 흩어져 네 개의 능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의 능은 모두 42기이다. 약 10%를 중종 부부가 차지했다. 역대와아 중 최다이다. 왕과 정비, 계비가 오손도손 모여 있으면 좋으련만.

아버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인 선릉이 곁에 있다. 합쳐서 선정릉이라 부른다. (205쪽)

강릉 : 명종과 인순왕후
원칙대로 한다면, 태강릉의 명칭은 강태릉이 되어야 한다. 태릉은 왕비 신분인 문정왕후의 능이고, 강릉은 임금인 명종의 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의 여인을 어머니로 둔 탓에 명종은 죽어서도 어머니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33쪽)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어머니 문정왕후릉(태릉)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동쪽 산줄기에 있다. (239쪽)



<오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신씨 -> 장경왕후 윤씨 (205쪽)

단촐한 석물의 연산군묘(위) -> 단출한 (195쪽)

<목차>

우리 시대에 왕릉이란 무엇인가

프롤로그 1
프롤로그 2

제1대 태조 건원릉
무학대사가 없었다면, 그는 단지 사나운 장수에 불과했을 것
용의 선택, 용의 분노, 용의 눈물

제1대 태조 원비 신의왕후 제릉
굽은 나무처럼 선산만 지키다 간 여인

제1대 태조 비 신덕왕후 정릉
왕조의 시작, 여인의 파란만장도 시작

제2대 정종과 정안왕후 후릉
마음을 비우고 천수를 누리다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 헌릉
척불의 회오리가 시작되다, 아비를 부정하리라
업장은 짧고 과보는 길다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 영릉
두 얼굴의 영웅, 세종
한글을 쓰는 행복, 가없어라

화합의 축제 종묘대제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 현릉
29년간의 왕세자, 왕 노릇은 2년 3개월

제6대 단종 장릉
청령포에 떠도는 외로운 고혼

제6대 단종 비 정순왕후 사릉
정순왕후여, 이제 한을 푸소서

제7대 세조와 정희왕후 광릉
역사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세조, 상원사 계곡에서 문수동자를 만나다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경릉
어ㆍ비의 능이 왕의 능보다 높은 곳에 있네!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창릉
스무 살, 짧은 생애가 남긴 몇 개의 기록

제8대 예종 원비 장순왕후 공릉
압구정동 신화의 그늘, 장순왕후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선릉
성종, 모든 것을 이루었는가, 다 잃었는가

제9대 성종 원비 공혜왕후 순릉
요절한 자매, 함께 누워 있어 그들은 외롭지 않다

제9대 성종 폐비 윤씨 회묘
생애만큼 곡절 많은 회묘

제10대 연산군과 폐비 신씨 연산군묘
조선조 비극의 하이라이트 연산군

제11대 중종 정릉
칼이 없는 권력은 힘이 없다

제11대 중종 원비 단경왕후 온릉
7일간 왕비 자리에 있다가 쫓겨난 비운의 여인

제11대 중종 제1계비 장경왕후 희릉
권력 다툼에 무덤이 옮겨지고, 키워 준 이마저 농락거리로 만들다

제11대 중종 제2계비 문정왕후 태릉
태릉에서 문정왕후와 보우 다시 보기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 효릉
하늘이 낳은 대효자의 짧은 치세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강릉
눈물의 제왕, 명종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및 계비 인목왕후 목릉
국난을 맞아 불교의 저력을 발휘하다
국난 극복을 위해 활약한 선조대의 고승들

[부록]
▷조선시대 능·원·묘 일람
▷조선 역대 왕 생존연대 및 재위기간
▷참고문헌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1

저자
이우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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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할미디어 | 2009-06-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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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은 조선왕조 27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추존 왕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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