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화성행차

저자
한영우 지음
출판사
효형출판 | 2007-04-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조선 르네상스의 진수, 정조의 화성행차 반차도를 통해 정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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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 중에 마지막으로 가장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정조대왕의 치세 기간이 아닐까 싶다.


정조의 통치 기간 중에서도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잔치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 방문을 함께 하기위한 행차는  멋있다는 생각을 넘어 더 이상 오지 않을 태평성대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이런 아쉬움을 한 켠으로 접고 그 당시로 돌아가서 임금의 행차가 어떤 모습으로 지나갔을까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행차를 기록한 반차도를 선명하게 채색하고 설명도 달아 놓은 것이 위의 책이다.


정조가 왜 화성을 만들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들여 화성으로 행차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읽고 있으면 이 행차를 마치고 5년 뒤 요절하는 정조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여겨진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모습이 조금 더 실현되었더라면...하는 상상만 할 뿐이다.


조선시대 의궤의 상세한 기록이 가지는 가치는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의궤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매체에서만, 글로만 전해들은 대단한 유산인 의궤의 그림을 직접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책이 있어 다행이다.

 


정조가 왜 화성을 건설했는가. 이 대답을 가장 확실하게 해주는 것은 '화성(華城)'이라는 이름 자체다. 이 이름은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編)>에 나오는 '화인축성(華人祝聖)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화(華)라는 지방에 봉해진 어떤 사람이 요(堯) 임금에게 수(壽)와 부(富) 그리고 다남(多男)을 기원하자, 요임금은 "수(壽)는 욕됨이 많고, 부(富)는 일이 많으며, 다남(多男)은 걱정이 많아서 싫다. 이 세 가지는 덕(德)을 기르는 까닭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화성'이라는 이름에서 정조는 백성의 입장에서는 황실의  부귀와 번창을 기원하는 도시요, 와아의 입장에서는 요 임금처럼 덕(德)을 펴는 도시라는 두 의미를 함축하려 하나 것이다. 결국 왕은 자신이 요 임금 못지 않은 성인(聖人)이라는 점을 신민( 臣民)에게 보여주기 위해 화성을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25쪽)




정조는 왜 이토록 행행을 많이 가졌을까. 물론 그것은 어버이에 대한 효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왕이 행행 중에 행한 일을 살펴보면, 행행의 목적이 효심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조는 행행 중에 3355건의 상언(上言)이나 격쟁(擊錚)을 처리했다. 그러니까 한 번 행차중에 평균51건의 민원 (民怨)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다. (27쪽)



<오타 >
말을 탄 채 각종 안기를 연주하는 악대만도 115명에 달하여 → 악기를  (30쪽)

 

 

 

<목차>

1.정조 조선왕조의 르네상스를 이끌다
정조는 어떤 군주를 꿈꾸었는가
 왕을 왕이게 하리라 - 왕권강화와 민국사상
 새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다 - 정조의 이용후생 정신
정조에게 화성은 무엇이었나
 왕의 기상과 포부가 천하를 호령하니
 집집마다 부유하고, 사람마다 화락하는 낙원도시
 노동자의 이름 하나도 귀히 여긴 왕의 마음
정조는 왜 화성을 자주 방문했는가

2.<반차도>
화려하고 장엄한 화성행차의 기록, <반차도>

3.단 8일을 위한 1년간의 준비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자 엄히 다스릴지니
새 길을 열고 다리를 놓다
 서울과 화성을 잇는 신작로의 건설
 왕이 직접 배다리 설계에 나서다
 조선시대 다리 역사에 한 획을 긋다

철저한 준비 끝에 출발 전야를 맞다

4.화성행차, 그 8일간의 기록
첫째 날(윤2월9일)
 새벽을 여는 1킬로미터의 장엄한 행력 - 창덕궁
 날 좋고 어머니 만강하니 - 노량행궁, 시흥행궁
둘째 날(윤2월10일)
 궂은 날을 무릅쓴 행군 - 시흥, 청천평, 사근참행궁, 지지대고개. 진목정
 경사스런 봄비가 왕의 도착을 알리네 - 화성행궁
셋째 날(윤2월11일)
 유학 진흥의 뜻을 밝히다 - 화성향교 대성전
 문무과 별시를 열어 인재를 뽑다 - 화성행궁의 낙남헌
 회갑잔치 예행연습을 열다 - 봉수당
넷째 날(윤2월12일)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하늘에 맺히다 - 현륭원
 정조의 친위부대, 야간훈련에 나서다 - 서장대
다섯째 날(윤2월13일)
 성대한 환갑잔치가 열리다 - 봉수각
여섯째 날(윤2월14일)
 쌀을 나누며 가난한 백성과 함께 기뻐하다 - 신풍루
 노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다 - 낙남헌
 활을 쏘며 문무겸주의 군주상을 보이다 - 득중정
일곱째 날(윤2월15일)
 귀경길에 오르다 - 화성을 떠나 시흥으로
여덟째 날(윤2월16일)
 백성들을 가마 앞으로 불러 직접 대화를 나누다 - 시흥
 만인의 노고를 치하하며 돌아오다 - 노량 용양봉저정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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